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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philosophy이란 뭘까?(4)

2017.03.14 | 조회 706 | 공감 1

3 무엇이 지혜sophia인가

일상을 살아가노라면 우리는 “그는 지혜가 없어 세상일에 대해 잘 대처해 갈지 의문이다.”, “그녀는 다방면에 대단한 지혜가 있어.”, “그는 참 지혜로운 사람이야.”, “넌 왜 그리 지혜롭지 못하냐?” 등과 같이 ‘지혜’란 말이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종종 듣게 된다. 심지어 가시덤불 같은 세상살이에 너무 지쳐 선사先師를 찾아가 도道를 구한다거나 지혜를 구한다고 이리저리 헤집고 돌아다니는 구도자들도 있다.

‘지혜’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일까? 이런 문제들이 던져지면 그리 간단하게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통념적으로 대수롭지 않게 사용하고 있는 ‘지혜’란 말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울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지혜’란 말이 가지는 본질적인 뜻을 보다 선명하게 알고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에서 철학에서 말하는 지혜의 어원적인 의미부터 살펴보려 한다.

지혜(Sophia)의 어원적인 뜻
‘지혜’는 고대 그리스어의 동사 ‘지혜롭다(sophizō)’에서 ‘지혜로운(sophos)’이라는 형용사로 파생되었고, 이로부터 명사가 된 것이다.

‘지혜로운(sophos)’에서 어간은 ‘soph-’인데, 이는 근원적으로 직업에 관계하여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혜로운(sophos)’은 원래 일상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데에 있어 그 분야에서 잘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구두를 잘 만드는 사람,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 말을 잘 타는 사람, 활을 잘 쏘는 사람 등, 각각의 직업에서 뛰어난 사람을 지혜로운 자라고 불렀던 것이다.

‘지혜로운(sophos)’은 원래의 뜻이 점점 확장되어 물건을 실질적으로 다루는 데에 있어서 영리하거나 혹은 윤리적인 행동에 있어서도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 즉 일반적으로 자기가 맡은 분야에 있어서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을 가리키게 됐다.


요컨대 ‘지혜로운 사람’은 손재주이건 인위적인 것이건 구체적인 행위에 있어서 슬기로운 사람을 뜻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혜로운 사람’에게 있어서 지혜롭게 행위를 하는 ‘행위’와 지식적인 것으로서의 ‘지혜로운’은 분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그리스 사회에 고도의 문화와 기술이 발달하면서 행위와 함께 쓰였던 ‘지혜로운’은 점점 추상화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그때그때의 행위와 일치하지 않은 지식으로 진화하게 되자 점차 행위는 행위대로 지식적인 것은 지식적인 것대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이 때 그리스인들은 행위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지식적인 측면을 ‘지혜로운’으로 말하게 됐는데, 이는 사물을 탁월하게 혹은 훌륭하게 다룰 수 있는 ‘지적 능력’을 의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건축행위가 일어나는 장면을 연상하면 쉽게 구분이 될 것이다. 우리가 목조건물을 짓고자 할 때, 집을 훌륭하게 지을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설계자와 공사장에서 실제로 집을 짓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 전자의 사람은 훌륭한 집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알기 때문에 그런 집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지만, 후자의 사람은 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건축 설계에 따라서 집을 짓는 작업만을 수행할 따름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어떤 것을 아주 훌륭하게 잘 해낼 줄 아는 능력으로서의 기술(technē)은 곧 ‘지혜’라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그런데 탁월하거나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 능력은 원래의 상태에서 머물지 않고 자꾸 진보하게 됐다. 즉 이러한 어떤 능력은 으뜸이 되는 능력도 있고, 중간에 오는 것도 있어서 항상 정도(degree)를 가지게 된다는 뜻이다. 이 경우에서 지식이 곧 능력임을 추론해낼 수 있다.


요컨대 어떤 것을 잘할 줄 아는 능력이란 여러 가지의 대상들에 대한 앎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다양한 일들에 있어서 어떻게 처리하고 행위를 할 것인가에 대한 앎을 가진다는 것은 그것들에 대해 탁월하게 처리할 지적능력을 가진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따라서 지적으로 사물들을 훌륭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이란 곧 지적인 앎을 뜻하므로, 지적 능력으로서의 지혜는 앎(지식)과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지혜는 탁월하게 아는 것
지혜는 앎(지식)과 실제로 같은 의미일까?

이 문제를 명쾌하게 구분 짓기 위해서는 ‘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가 밝혀져야 한다. 문제는 ‘앎(지식)’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는 인식론認識論(epistemology)에 관한 것으로, 철학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철학자들에게 줄곧 많은 골칫거리를 안겨주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필자는 여기에서 ‘안다’는 말의 사용법이 그리스 사회에서 다양한 의미로 통용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지혜에 관련된 것만을 설명해 보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앎들이 있다. 그리스 시대만 하더라도 다양한 종류의 앎들을 구분했다. 시각을 동원해 봐서 아는 감각적 지식(eidō : 이는 감각적 시각으로 보는 것으로부터 나중에 외관을 봐서 아는 것인 에이도스eidos가 나온다), 관조적인 상태로부터 아는 명상적인 지식(thēoria), 사물들을 비교할 때 구분하여 아는 일반적인 지식(gignōskō), 목격자의 증언에 따라 진술을 통해 아는 역사적인 지식(historia), 사유하여 아는 정신적인 지식(noein), 마음의 상태를 아는 실천적 지식(phroneō)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앎들 외에 학문적인 문맥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앎도 있다, 이는 ‘알다(epistamai)’라는 동사에서 나온 인식(epistēmē)이다.

인식이란 앎도 원초적으로는 “농사를 지을 줄 안다.”, “집을 지을 줄 안다.”, “스키를 탈 줄 안다.”, “글을 쓸 줄 안다.” 등과 같이 기본적인 의미에서 출발했다. 인식이란 앎도 지혜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행위와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하였지만, 나중에 행위적인 측면이 분리되어 떨어져 나가고 남아 있는 지식의 측면만이 인식으로 진화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와 같이 분리된 지식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지혜와 인식은 같은 뜻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인식(epistēmē)과 지혜(sophia)는 엄밀한 의미에서 같은 것이 아니다. 양자 간에는 근본적으로 극명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탁월卓越함’이 들어가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차이다. 지혜는 탁월함의 의미를 포함하지만, 인식은 그런 의미를 포함하지 않는다. 즉 ‘탁월함’의 의미를 내장하는 지혜는 으뜸이 되는 지식이나 중간에 오는 지식도 있어서 지식의 정도(degree)를 허용하지만 인식은 정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우리가 ‘보다 더 큰 지혜’란 말을 쓸 수 있지만 ‘보다 더 큰 인식’이란 말을 쓸 수 없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지혜는 앎들 중에서도 가장 탁월하게 아는 것, 즉 으뜸이 되는 지식을 의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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