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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 칼럼] 겸괘가 주역에서 15번째를 차지하는 이유는?

2020.01.17 | 조회 559 | 공감 1

겸손한 마음은 천지에 대한 외경에서



(상생문화연구소: 양재학)


『명심보감』은 겸손이 인생의 황금률이라고 말한다. “내 몸이 귀하다고 하여 남을 천하게 여기지 말 것이며, 자기가 크다고 하여 남의 작음을 업신여기지 말 것이며, 용맹을 믿고서 적을 가볍게 보지 말라.” 『明心寶鑑』「正己篇」, “太公曰 勿以貴己而賤人, 勿以自大而蔑小, 勿以恃勇而輕敵.”


겸손은 존경받는 CEO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최상의 덕목이다. 이제는 국민들 앞에 겸양의 미덕을 보이는 국정의 지도자가 필요하다. 사회 지도층 역시 몸을 낮춰 국민에게 다가서야 한다. 국민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정책은 국가와 국민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겸손은 모든 덕의 근간이다. 겸손하지 못한데서 시기와 질투, 증오와 싸움이 일어난다. 어거스틴은 기독교에서 가장 소중한 덕목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겸손’이라고 대답했다. 둘째와 셋째도 ‘겸손’이라고 했다. 겸손은 음식 맛을 조절하는 ‘소금’과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러니까 겸손한 사람은 아름답다. 겸손은 내면의 심층에서 우러나오는 도덕적 행위인 것이다.   


주역은 항상 진리에 몸담으라고 가르친다. 주역이 말하는 진리의 원형은 천지이다. 천지는 생명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 


천지의 뜻은 말 없는 글자로 표현된 ‘경전經典’이다. 천지는 한 순간도 쉼이 없이 변화한다. 단단한 쇠도 부식하고 달도 차면 기울어지는 것처럼, 폭등하는 주식도 언젠가는 내리막 친다. 세상의 이치가 이러할진대 어느 누가 겸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겸손한 마음은 천지에 대한 외경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영국 속담에 “겸손이 지나치면 분명 교만이 된다”는 말이 있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듯이, 자신을 낮출 때 진정한 겸손이라 할 수 있다. 겸손은 예절교육을 통해서 획득되는 학점이 아니다. 겸손은 남을 드높여 푸근하게 만드는 반면에 거드름 피우는 사람은 타인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겸손은 독일말로 ‘Demut’, 즉 자기를 낮춘다는 겸허의 뜻이다. 불손한 사람은 선심을 쓰고도 욕을 먹지만, 겸손한 사람은 돈이 없어도 대접받는다.” 동서양의 현자들이 강조하는 덕목은 겸손에 집중되어 있다. 

  

“가장 훌륭한 지혜는 친절함과 겸손함이다.”(탈무드)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만이 겸손할 수 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를 세우는 것이다.” “용기와 힘을 함께 갖춘 사람은 결코 교만하지 않다. 힘 있는 사람의 겸손은 진실이며, 약한 사람의 겸손은 허위이다.”(라즈니쉬)

“겸손한 사람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호감을 산다.”(톨스토이)

“겸양은 천국의 문을 열고, 굴욕은 지옥의 문을 연다.”(파스칼)

“모든 덕이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라면, 겸손은 그 첫째 계단이다. 이 첫째 계단에 오르면 그 다음에는 위로 올라가기가 쉬운 것이다.”(어거스틴)

“겸손은 하나님 나라의 풍부한 창고를 발견하는 눈이요. 그것을 받는 손이다. 우리가 남을 도울 때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신다.”(웨슬레)



64괘 중에서 수화기제괘水火旣濟卦가 형식적으로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다. 양은 양위에 있고, 음은 음위에 있으며, 더욱이 2효와 5효의 대응이 중정中正(䷾)이므로 순음순양인 건곤괘乾坤卦를 제외하고는 가장 좋다. 


겸괘謙卦는 2효와 5를 제외한 나머지들은 음과 음의 대응일 뿐이다. 하지만 전체 효들의 내용은 가장 좋은 말로 이루어져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겸괘가 주역에서 15번 째를 차지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❶ 겸謙은 진리의 말씀인 ‘언言’에 벼 ‘화禾’글자가 둘이고, 이를 다시 손으로 붙들고 있는 모습이다. 벼는 생명을 담보하는 신성한 먹거리이다. ‘겸謙’의 메타포는 진리를 먹고사는 존재가 바로 군자임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군자는 굶주리더라도 진리와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배부르다. 


❷ 주역의 군자상은 태괘와 건괘 3효가 잘 대변한다. 그 중에서 건괘 3효는 군자의 길을 제시한다. 겸괘는 3효가 주인공이다. 그것은 건괘 3효가 이동한 것이다.


❸ 겸손의 미덕은 보통 인생의 처세술이나 종교인들의 가치관으로만 여기는 것이 상례이다. 하지만 「단전」에서는 자연질서(천도)는 땅의 질서와 귀신의 존재법칙과 인간 삶의 규범을 일치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겸괘는 진리의 총체적 구조를 얘기하고 있다.


❹ 겸괘는 진리에 대한 깨달음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맹자는 “하늘은 말이 없으나, 그 운행과 일로써 보여줄 따름이다” 『맹자』「만장」상편, “天不言, 以行與事, 示之而已矣.”라고 했다. 하늘이 진리를 베푸는 방식은 질서정연한 운행과 그것이 전개하는 사건이다. 


진리의 현현顯現이 바로 자연과 역사와 문명과 인생사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진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깊이 잠든 인의예지의 본성을 겉으로 드러내어 실현하면 된다는 것이 곧 맹자의 사유였다. 결국 진리의 개시성과 인간본성의 개시성의 만남을 통해 ‘하나됨’의 방향성을 제시한 모델이 겸괘인 것이다.


❺ 겸괘에는 진리관과 인식의 문제와 수양론의 통합을 제시한다. 하늘은 진리의 빛을 위에서 아래로 쏘아준다(↓). 인간은 숭고한 도덕적 본성을 깨닫고 아래에서 위의 방향으로 진리의 고향으로 성큼 다가서야(↑) 한다. 겸괘는 인간이 하늘과 땅의 진리와 하나되는 ‘삼위일체적 존재’임을 터득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가르치고 있다. 


❻ 천지는 선천과 후천의 싸이클로 순환한다는 정역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겸괘는 수리철학적으로 무극과 황극은 하나라는 ‘십오일언十五一言’과, 무극과 태극은 하나라는 ‘십일일언十一一言’의 내용을 겸비하고 있다. 



10은 무극이요, 5은 황극이요, 1은 태극이다. 무극의 작동은 10→9→8→7→6→5→4→3→2→1의 방향으로 진행한다. 그래서 건괘에서는 “가장 으뜸가는 생명의 근원인 하늘은 9를 작용의 수로 사용하는 데서 하늘의 법칙을 알 수 있다[乾元用九, 乃見天則]”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건괘乾卦 형성은 본체인 10이 전제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곤괘坤卦는 왜 작용의 수를 6으로 사용했을까? 곤의 작용은 본체인 5를 전제로 삼는다. 따라서 건괘는 ‘체십용구體十用九’, 곤괘는 ‘체오용육體五用六’으로 정리할 수 있다. 건괘의 본체수와 곤괘의 본체수를 합하면 10 + 5 = 15이다. 또한 건과 곤의 작용수를 합해도 9 + 6 = 15가 성립되므로 본체와 작용은 동일원리의 다른 측면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정역의 존재론적 표현체인 10무극과 5황극을 결합해도[10 + 5 = 10] 마찬가지 결과이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주역에서 왜 겸괘가 15번째를 차지하는가를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역괘도는 복희괘도 및 문왕괘도와는 괘의 배열이 다르다. 특히 복희괘의 건곤이 남북으로 배열이 된 것에 반해서, 정역괘는 건곤이 북남으로 바뀌어 있다. 그것은 ‘천지비天地否’에서 ‘지천태地天泰’의 양상을 보인다. 


아울러 복희괘에서 건곤의 수가 각각 1과 8, 문왕괘에서는 2와 6인데 비해서 정역괘도에서 ‘지천태’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각각 10과 5이다. 이는 곧 하늘과 땅의 이치가 하나(十五一言)라는 이론과 상통하기 때문에 겸괘의 내용이 가장 좋은 말로 구성되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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