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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함께하는 동인괘同人卦의 이치(김재홍)

2019.04.27 | 조회 210 | 공감 1

사람들과 함께하는 동인괘同人卦의 이치(김재홍)

김재홍(충남대 철학과 교수) / STB상생방송 <소통의 인문학, 주역> 강사


충남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철학박사 학위 취득(중국철학 전공, 세부전공 : 주역과 정역). 충남대학교 역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역임, 목원대, 배재대, 청운대 외래교수 역임하였고, 현재 충남대학교 철학과에서 강의 중이다. STB상생방송에서 〈주역 계사상·하편〉 강의를 완강하였고 현재 <〈소통의 인문학 주역〉을 강의, 방송 중이다.

3월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추운 겨울에 움츠리고 있다가 따뜻한 봄을 맞아 그동안 소원했던 사람들과의 교류가 활발해진다. 또한 취미와 기호, 생각에 따라 새로운 관계를 시도하기도 한다. 기존의 시골 동네 죽마고우들의 모임, 각급 학교 동창들 모임, 여러 가지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한 모임 등, 사람들이 함께하는 모임의 유형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그러나 각종의 모임을 통해 사람들과 함께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순수한 동기보다는 의도적인 내 생각과 이익을 우선시하여 가끔은 의견 충돌이나 갈등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과 함께하는 바람직한 지혜는 무엇인가? 


천화동인괘天火同人卦


①아래(하괘下卦)에는 불(화火)을 상징하는 이괘離卦(☲)가 있고, 위(상괘上卦)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乾卦(☰)가 있다. 불(화火)은 밝음, 태양, 진리를 상징한다. 하늘에 있는 밝은 진리로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의미가 있다.
②아래에 있는 불이 건乾인 하늘(천天)로 타올라 간다. 즉 아래에 있는 불은 위에 있는 하늘과 뜻을 같이하는 것이다. 둘은 다른 것이지만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일을 하는 이치를 설명한다. 
③아래의 이괘(☲)는 태양이고, 건괘(☰)는 하늘이다. 매일 돌고 있으면서도 떨어지지 않으며, 다 같이 서쪽을 향하여 운행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협동하고 일치하는 것, 사람과 사람이 뜻을 함께하는 길을 말한다.


「괘사卦辭」에 “사람들을 들판에서 널리 구하면 형통하리니,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우니, 군자의 바른 길이 이롭다.”고 말한다. 들판에서 사람들과 같이한다는 것이다. 사람들과 협동하고 일치하는 데는 공평·정대한 두 가지 덕목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남과 함께하는데 멀리 밖에 있는 들에서 한다는 것은 그들이 공평하고 사심이 없어 어떤 곳에 사는 사람과도 협동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내 목적을 달성하고 욕심을 채우려는 소인배의 생각으로는 사람들이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널리 천하의 사람들과 함께하면 그들의 뜻이 서로 상통되며, 그 힘도 크게 신장된다. 사람들과 협동 일치하면 어떤 험난한 곳도 건널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도 사악한 마음으로 하면 흉하게 되는 것이다. 「괘사」에서는 사람들과 협동 일치하는 데는 성인지도聖人之道를 근원으로 공명·정대라는 두 가지 덕을 강조하고 있다. 오로지 군자는 오직 성인지도를 근원으로 정도를 실천함으로써 능히 천하 사람들의 뜻을 통달시킬 수 있고, 함께 나아갈 수 있다.


문밖에서 사람들을 널리 구하여 함께하면 허물이 없다고 한다. 그 결과로 사람과 사람이 협동하는 일을 공평하게 처리할 수 있다. 또한 “사람과 사람이 협동하는 일을 대문 밖에서 한다.”라고 한다. 문밖에서 사람들과 협동한다는 것이다. 만일 대문 안에서 가족들과 협동하면 사사로운 정情에 이끌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고 좁아진다. 연줄에 사사로운 정을 두고 사람들을 구하다면 일을 공평하게 처리할 수 없다. 혈연과 학연, 지연에 따라 사람들과 함께하면 흉하다고 한다. 동인의 도道, 즉 사람들이 함께하는 길은 오로지 공명정대함이다. 


많은 사람들은 남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는 “덕은 부족하면서 높은 자리를 원하고, 아는 것은 적으면서 큰일을 도모하려고 하며, 힘이 약하면서 맡은 것이 무거우면 화禍가 미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대표적인 소인지도이다. 

사람들의 길흉화복이란 그 사람의 행동 여하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사람은 나아갈 때 나아가고, 물러설 때 물러설 줄 알아야 피흉취길彼凶取吉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남의 것을 취하기 위해 강폭한 성질을 드러내고 무리하게 군사를 일으키면 흉하여 재앙을 받게 된다. 


「괘사」에 “내 것이 아니고, 내 자리가 아닌데 남의 것을 공격하여 강제로 가지려는 것이 도에 어긋난 것임을 알고 남을 공격하는 소인지도를 중지하고 바른 길로 돌아가면 길吉함을 얻게 된다.”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나 세력이 부족하여 당할 수 없음을 알고 부득이 공격을 하지 않는 기회주의적 행동은 길함을 얻을 수 없다. 스스로 반성하여 바른 길을 따르고, 진심으로 잘못을 고치고 착한 곳으로 옮기면 길함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성인지도와 군자를 만나는 것이 모든 일의 근본이다. 그러나 소인의 권모술수의 능란함으로 처신을 하면 처음은 웃지만 나중에는 울부짖게 된다고 한다. 반면에 성인지도를 만나 실천하는 것은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 울부짖으면서 소리친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군자와 성인지도를 만나 큰 고난을 극복하게 되니, 나중에는 기뻐하고 웃는다는 것이다. 


불가의 논리로 중생 속에 부처가 있다고 한다. 사람이 드문 성 밖에서 사람들과 협동 일치하려고 해도 멀리 떨어져 있어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극히 적다. 즉 천하 사람들과 협동 일치하고 싶은 소망은 있지만 아직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700여 년 전에 중국에서 불교의 경전인 『금강경金剛經』을 해설한 『금강경오가해』란 책에 나오는 ‘야보 스님’의 시구에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글귀가 있다. 그분의 말씀은 처음에 접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을 만나고 보니 자타불이自他不二라 선악善惡과 미추美醜가 모두 구분되지 않는 하나이기에,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단계에 들어가 보니, “부처님의 불성佛性을 보여 주는 도구로서 산과 물이 모두 부처님의 법인데, 부처님은 어디에 계신 것인가?”라고 반문하신 것으로 보인다. 즉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교외郊外에서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동인同人의 뜻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데는 하늘에 있는 밝은 진리와 함께하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성인지도를 믿고 실천하면 하늘이 도와서 이롭지 아니함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늘의 도움이 없는데 어찌 행하겠는가.”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들과 함께하는 데 성인지도로 하면 너와 나의 대립에서 벗어나 참된 하나인 우리가 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진리에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하여 공자께서는 「계사상」 편 8장 첫 구절에서 “천하가 무엇을 염려하고 무엇을 근심하겠는가? 가는 길은 달라도 돌아갈 곳은 하나이며, 생각은 백 가지라도 이치는 하나이다. 그러므로 천하가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염려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이것은 군자의 첫 번째 과제가 진리와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함을 말한다. 


(월간개벽 2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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